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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우 기자]
▲ 진안 백운면 손내옹기 작업실
ⓒ 이완우
늦가을 바람에 가로수들이 낙엽을 우수수 떨구는 11월 마지막 주말이었다. 전북 진안 백운면 평장리 정송마을의 손내옹기를 찾아 여행하였다. 작업장에서 만난 이현배 장인은 "작업장의 바닥마저 흙이어야 숨이 통한다"라고 말했다. 흙을 섞고, 기는 편입니다 릴플레이갓 리고, 불과 바람에 몸을 맡기는 옹기장이의 철학은 덕운정이라는 작은 정자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흙과 곡선, 떠도는 삶과 머무는 건축이 만나던 늦가을의 여유로운 여행이었다.
흙 위에 선 장인의 자리
진안 백운면의 늦가을 바람은 시렸지만, 흙의 숨결은 따뜻했다. 손내옹기 작업장의 문을 열자마자 먼지처럼 관련 내용 메이저릴플레이 페이지 고운 점토 냄새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작업실 바닥은 시멘트가 아니라 '흙'이었다. 발바닥이 푹 잠길 정도 부드러운 촉감. 이곳에서 흙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숨 쉬는 생명체였다. 따뜻한 차를 따르며 이현배 장인이 말했다.
"옹기장이는 흙 위에 살아야 해요. 바닥마저 흙이어야 숨이 통해요."
그의 말 관련 내용 사이다릴플레이 한마디에 눈앞 풍경의 결이 달라졌다. 흙 위에 앉아 흙을 만지고, 흙을 먹여 불을 태워 흙에 기댄 삶을 굽는 사람. 장인은 옹기를 빚는 것이 아니라, 옹기의 호흡에 귀를 대는 사람이었다. 관련 내용
오션릴플레이
▲ 진안 백운면 손내옹기 작업실
ⓒ 이완우
떠돌던 흙의 사람들. 움과 막을 지어 올려 머물 관련 내용 바다신2릴플레이 고, 이내 옮겨 다니며 살았던 사람들. 이현배 장인은 오래된 옹기장이의 삶을 꺼내놓았다.
"옛날부터 옹기장이의 삶은 중화 요릿집 철가방 같았어요. 계속 옮겨 다녔죠."
흙이 있는 곳, 장을 여는 마을, 발효가 필요한 삶이 존재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옹기장이는 스스로 정착보다 이동, 소유보다 대여, 안내용다 호흡을 선택한 흘러가는 삶을 살았다. 밤톨이 굴러 내릴 만큼 경사진 땅이면 가마를 묻을 만하다고 여겨서 땅을 파고 벽을 세웠다.
그것이 바로 움막으로 가마터였다. 지하를 파내는 움과 지상을 올리는 막을 옹기장이는 적절히 조절할 줄 알았다. 추운 지방은 움이 깊어지고, 이곳 진안 같은 곳은 막이 조금 더 높아졌다.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방식 또한 옹기장이는 기후와 땅에 맡기는 자연 기술을 터득했다.
옹기장이의 시간은 정착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가마터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항상 떠날 마음의 채비가 깊숙이 자리했다. 판소리꾼이 소리 듣는 귀를 찾아 떠돌던 길처럼, 옹기장이는 자연과 필요를 따라 걷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옹기장이는 자기들의 삶의 터전인 가마터를 영구적으로 짓지 않았다고 한다.
▲ 진안 백운면 손내옹기 가마
ⓒ 이완우
▲ 진안 백운면 손내옹기 가마
ⓒ 이완우
아니 가마터는 애초에 영구적일 수 없었다. 가마는 불을 먹으면 약해지기 마련이고, 겨울을 지나면서 얼었다가 녹으면 내구력이 오래갈 수 없었다. 옹기장이는 가마를 지을 때 벌써 언젠가는 떠날 것을 마음에 두어야 할 숙명이었다.
옹기는 '강함'이 아니라 '숨'이었고, 유연하게 섞이고 이어지는 토기의 철학이었다. 장인은 흙을 한 움큼 쥐어 보여주었다. 몇 가지 성질의 흙이 한 덩어리로 뭉쳐 있는 점토. 사기장이는 흙을 나누고 분류하여 순수한 고령토를 찾는다면, 옹기장이는 여러 흙이 잘 섞인 점토를 찾는다고 한다.
"흙도 섞여야 숨을 쉬어요. 순수한 것만 고집하면 깨져요."
옹기는 물은 막고 공기는 통과시킨다. 그래서 장은 익고, 김치는 숨 쉬고, 된장은 살아 움직인다. 이렇게 옹기에 담긴 음식의 발효는 기다림이었다.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러오고 맞이하는 것이다. 강함보다 숨, 통제보다 순응, 완벽보다 공존. 옹기의 정신은 그렇게 이어져 왔다.
자연과 몸을 맞댄 공간
여행은 머물렀다가 이내 떠나간다. 손내옹기의 이현배 장인이 백운면 운교리 원산마을에 있는 덕운정을 찾아가 보라고 선택했다. 정송마을 손내옹기에서 덕운정까지는 4km 거리로 가까웠다. 마을 앞 주차장에서 언덕 위에서 기다리는 정자가 보였다.
▲ 진안 백운면 덕운정
ⓒ 이완우
▲ 진안 백운면 운교리 원산마을 고샅길
ⓒ 이완우
마을 정자란 대체로 마을 앞에 세워지기 마련인데, 이 정자는 마을 뒤 언덕 마루에 있다. 구불구불한 고샅길을 타고 언덕을 올랐다. 작은 정자 하나가 낙엽 지는 서나무 아래에 마치 누군가 오래전 놓아두고 잊어버린 기억처럼 가만히 있었다.
덕운정(德雲亭). 이 이름은 덕태산 아래 운교리에 있는 마을의 정자라는 의미란다. 1971년 마을 울력으로 세워진 정자. 전면 2칸, 측면 2칸. 정방형의 소박한 집. 대들보는 곧지 않고, 서까래는 가지 뻗듯 자유롭게 뻗었으며, 기둥은 민흘림의 곡선을 그대로 살렸다. 정형과 비정형이 섞여 있는 구조. <백운면지>(2008년)에 이 정자의 내용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정자 모양이 완벽하지 않아 더 아름다운 건축. 그것은 옹기의 철학과 닮아 있었다. 옹기가 균일하지 않아 살아 있는 것처럼, 덕운정도 틀어지고 휘어진 부재를 그대로 살려 놓았다. 단단함보다 울림, 완벽함보다 유연함, 덕운정은 옹기의 기질을 닮았었다.
덕운정의 기둥과 보, 도리 등 큰 재목은 이곳 주변의 서나무를 베어 쓰고, 장여와 마룻널, 서까래는 마을 들녘의 노적봉 소나무를 데려왔다. 울력은 곧 발효였다. 사람과 나무와 흙이 서로 맞춰 들어가며 공간이 되었다.
▲ 진안 백운면 덕운정 대들보와 서까래
ⓒ 이완우
▲ 진안 백운면 덕운정 정자 현판과 서까래
ⓒ 이완우
정자의 목재들은 곡선과 직선이 서로 만나서 어울리며 한 지붕 아래 함께 숨 쉬게 되었다. 그 모습은 옹기와 다르지 않았다. 섞이고, 기다리고, 자연에 맞춰지며 완성되는 방식이었다. 강한 것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사는 데 필요한 만큼의 형상을 갖추면 충분하였다.
덕운정 천정을 올려다보니 종도리가 굽어 구름처럼 흐르고 서까래는 사방으로 펼쳐졌다. 회미장의 흰빛은 그늘을 머금어 더욱 깊었다. 그곳은 '보기 위한 건축'이 아니라 쉬기 위한 건축이었다.
덕운정 마루에 앉았다. 앞으로는 내동산이 높게 우뚝하다. 뒤로는 호남정맥 산줄기와 덕태산이 큰 병풍을 둘렀다. 정자는 언덕마루에 앉아서 주위의 산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정자의 기둥과 마루, 처마 사이로 보이는 차경(借景)은 운치를 더했다.
▲ 진안 백운면 덕운정 차경, 내동산 전경. 정자의 처마 아래, 바람이 지나가고 산이 걸터앉아 있었다.
ⓒ 이완우
정자는 사방의 바람이 불어가는 길목이었다. 손내옹기 이현배 장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옹기는 혼자 강해서 이기려는 게 아니에요. 함께 살아남으려는 거죠."
덕운정도 그랬다. 잘난 척하지 않고, 크지 않으며, 화려하지도 않다. 이제는 마을 사람들이 맡겨둔 온갖 농기계와 농자재를 말없이 품고 있었다. 옹기장이의 삶은 떠남이 곧 정체성이었다. 그 떠다니는 삶에는 어쩌면 선사시대 유목민의 정서가 겹겹이 배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옹기장이가 가마터를 떠나도 흔적을 남긴다. 가마터가 남고, 깨진 기와 조각이 남고, 발효의 기억이 남듯이. 덕운정 또한 그러하다. 마을 울력의 손길, 서까래 하나하나의 휘어짐, 노적봉 소나무의 결이 아직도 남아 있다. 사람들은 흘러가도, 흙과 나무는 기억을 품는다.
흙과 곡선의 철학을 만나다
▲ 진안 백운면 손내옹기 작업실
ⓒ 이완우
손내옹기에서 만난 이현배 옹기장의 손은 단단한 힘이 아니라 부드러운 길을 내고 있었다. 흙을 섞고, 기다리고, 숨을 주고 기다리는 시간이 옹기장이의 삶이었다. 옹기의 완성은 불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기술이 아니라 순응이었다.
덕운정도 그러했다. 곡선은 곡선 그대로 두고, 휘어진 대들보는 억지로 곧게 펴지 않았다. 사람이 자연을 다듬은 것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을 다스린 건축이었다. 흙처럼 숨 쉬고, 나무처럼 흔들리며, 그러나 끝내 무너지지 않는 유연함으로 옹기와 덕운정은 닮았었다.
강한 것이 오래 남는 것이 아니라, 숨 쉬는 것이 오래 남는다는 것을 알았다. 손내옹기 이현배 장인이 자기 가마터의 방문객에게 이웃 마을의 소박한 정자를 찾아보라고 선택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장인의 손끝에 머무는 옹기가 될 흙에서, 70년 동안 마을 뒤편에서 우두커니 자연처럼 머무는 정자의 기둥에서, 머무름과 떠남이 결국 같은 흐름이었음을 알았다.
▲ 진안 백운면 손내옹기 작업실
ⓒ 이완우
▲ 진안 백운면 덕운정에서 바라본 호남정맥 덕태산
ⓒ 이완우
진안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억년의 세월을 품고 기다림으로 고요하듯이, 진안 고원의 늦가을은 흙과 바람 숨결 속에서 조용히 깊어 가고 있었다. 진안 백운면 손내옹기에서 덕운정에 이르는 4km. 이날의 길지 않은 여정은 도리어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덧붙이는 글
▲ 진안 백운면 손내옹기 작업실
ⓒ 이완우
늦가을 바람에 가로수들이 낙엽을 우수수 떨구는 11월 마지막 주말이었다. 전북 진안 백운면 평장리 정송마을의 손내옹기를 찾아 여행하였다. 작업장에서 만난 이현배 장인은 "작업장의 바닥마저 흙이어야 숨이 통한다"라고 말했다. 흙을 섞고, 기는 편입니다 릴플레이갓 리고, 불과 바람에 몸을 맡기는 옹기장이의 철학은 덕운정이라는 작은 정자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흙과 곡선, 떠도는 삶과 머무는 건축이 만나던 늦가을의 여유로운 여행이었다.
흙 위에 선 장인의 자리
진안 백운면의 늦가을 바람은 시렸지만, 흙의 숨결은 따뜻했다. 손내옹기 작업장의 문을 열자마자 먼지처럼 관련 내용 메이저릴플레이 페이지 고운 점토 냄새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작업실 바닥은 시멘트가 아니라 '흙'이었다. 발바닥이 푹 잠길 정도 부드러운 촉감. 이곳에서 흙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숨 쉬는 생명체였다. 따뜻한 차를 따르며 이현배 장인이 말했다.
"옹기장이는 흙 위에 살아야 해요. 바닥마저 흙이어야 숨이 통해요."
그의 말 관련 내용 사이다릴플레이 한마디에 눈앞 풍경의 결이 달라졌다. 흙 위에 앉아 흙을 만지고, 흙을 먹여 불을 태워 흙에 기댄 삶을 굽는 사람. 장인은 옹기를 빚는 것이 아니라, 옹기의 호흡에 귀를 대는 사람이었다. 관련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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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 백운면 손내옹기 작업실
ⓒ 이완우
떠돌던 흙의 사람들. 움과 막을 지어 올려 머물 관련 내용 바다신2릴플레이 고, 이내 옮겨 다니며 살았던 사람들. 이현배 장인은 오래된 옹기장이의 삶을 꺼내놓았다.
"옛날부터 옹기장이의 삶은 중화 요릿집 철가방 같았어요. 계속 옮겨 다녔죠."
흙이 있는 곳, 장을 여는 마을, 발효가 필요한 삶이 존재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옹기장이는 스스로 정착보다 이동, 소유보다 대여, 안내용다 호흡을 선택한 흘러가는 삶을 살았다. 밤톨이 굴러 내릴 만큼 경사진 땅이면 가마를 묻을 만하다고 여겨서 땅을 파고 벽을 세웠다.
그것이 바로 움막으로 가마터였다. 지하를 파내는 움과 지상을 올리는 막을 옹기장이는 적절히 조절할 줄 알았다. 추운 지방은 움이 깊어지고, 이곳 진안 같은 곳은 막이 조금 더 높아졌다.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방식 또한 옹기장이는 기후와 땅에 맡기는 자연 기술을 터득했다.
옹기장이의 시간은 정착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가마터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항상 떠날 마음의 채비가 깊숙이 자리했다. 판소리꾼이 소리 듣는 귀를 찾아 떠돌던 길처럼, 옹기장이는 자연과 필요를 따라 걷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옹기장이는 자기들의 삶의 터전인 가마터를 영구적으로 짓지 않았다고 한다.
▲ 진안 백운면 손내옹기 가마
ⓒ 이완우
▲ 진안 백운면 손내옹기 가마
ⓒ 이완우
아니 가마터는 애초에 영구적일 수 없었다. 가마는 불을 먹으면 약해지기 마련이고, 겨울을 지나면서 얼었다가 녹으면 내구력이 오래갈 수 없었다. 옹기장이는 가마를 지을 때 벌써 언젠가는 떠날 것을 마음에 두어야 할 숙명이었다.
옹기는 '강함'이 아니라 '숨'이었고, 유연하게 섞이고 이어지는 토기의 철학이었다. 장인은 흙을 한 움큼 쥐어 보여주었다. 몇 가지 성질의 흙이 한 덩어리로 뭉쳐 있는 점토. 사기장이는 흙을 나누고 분류하여 순수한 고령토를 찾는다면, 옹기장이는 여러 흙이 잘 섞인 점토를 찾는다고 한다.
"흙도 섞여야 숨을 쉬어요. 순수한 것만 고집하면 깨져요."
옹기는 물은 막고 공기는 통과시킨다. 그래서 장은 익고, 김치는 숨 쉬고, 된장은 살아 움직인다. 이렇게 옹기에 담긴 음식의 발효는 기다림이었다.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러오고 맞이하는 것이다. 강함보다 숨, 통제보다 순응, 완벽보다 공존. 옹기의 정신은 그렇게 이어져 왔다.
자연과 몸을 맞댄 공간
여행은 머물렀다가 이내 떠나간다. 손내옹기의 이현배 장인이 백운면 운교리 원산마을에 있는 덕운정을 찾아가 보라고 선택했다. 정송마을 손내옹기에서 덕운정까지는 4km 거리로 가까웠다. 마을 앞 주차장에서 언덕 위에서 기다리는 정자가 보였다.
▲ 진안 백운면 덕운정
ⓒ 이완우
▲ 진안 백운면 운교리 원산마을 고샅길
ⓒ 이완우
마을 정자란 대체로 마을 앞에 세워지기 마련인데, 이 정자는 마을 뒤 언덕 마루에 있다. 구불구불한 고샅길을 타고 언덕을 올랐다. 작은 정자 하나가 낙엽 지는 서나무 아래에 마치 누군가 오래전 놓아두고 잊어버린 기억처럼 가만히 있었다.
덕운정(德雲亭). 이 이름은 덕태산 아래 운교리에 있는 마을의 정자라는 의미란다. 1971년 마을 울력으로 세워진 정자. 전면 2칸, 측면 2칸. 정방형의 소박한 집. 대들보는 곧지 않고, 서까래는 가지 뻗듯 자유롭게 뻗었으며, 기둥은 민흘림의 곡선을 그대로 살렸다. 정형과 비정형이 섞여 있는 구조. <백운면지>(2008년)에 이 정자의 내용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정자 모양이 완벽하지 않아 더 아름다운 건축. 그것은 옹기의 철학과 닮아 있었다. 옹기가 균일하지 않아 살아 있는 것처럼, 덕운정도 틀어지고 휘어진 부재를 그대로 살려 놓았다. 단단함보다 울림, 완벽함보다 유연함, 덕운정은 옹기의 기질을 닮았었다.
덕운정의 기둥과 보, 도리 등 큰 재목은 이곳 주변의 서나무를 베어 쓰고, 장여와 마룻널, 서까래는 마을 들녘의 노적봉 소나무를 데려왔다. 울력은 곧 발효였다. 사람과 나무와 흙이 서로 맞춰 들어가며 공간이 되었다.
▲ 진안 백운면 덕운정 대들보와 서까래
ⓒ 이완우
▲ 진안 백운면 덕운정 정자 현판과 서까래
ⓒ 이완우
정자의 목재들은 곡선과 직선이 서로 만나서 어울리며 한 지붕 아래 함께 숨 쉬게 되었다. 그 모습은 옹기와 다르지 않았다. 섞이고, 기다리고, 자연에 맞춰지며 완성되는 방식이었다. 강한 것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사는 데 필요한 만큼의 형상을 갖추면 충분하였다.
덕운정 천정을 올려다보니 종도리가 굽어 구름처럼 흐르고 서까래는 사방으로 펼쳐졌다. 회미장의 흰빛은 그늘을 머금어 더욱 깊었다. 그곳은 '보기 위한 건축'이 아니라 쉬기 위한 건축이었다.
덕운정 마루에 앉았다. 앞으로는 내동산이 높게 우뚝하다. 뒤로는 호남정맥 산줄기와 덕태산이 큰 병풍을 둘렀다. 정자는 언덕마루에 앉아서 주위의 산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정자의 기둥과 마루, 처마 사이로 보이는 차경(借景)은 운치를 더했다.
▲ 진안 백운면 덕운정 차경, 내동산 전경. 정자의 처마 아래, 바람이 지나가고 산이 걸터앉아 있었다.
ⓒ 이완우
정자는 사방의 바람이 불어가는 길목이었다. 손내옹기 이현배 장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옹기는 혼자 강해서 이기려는 게 아니에요. 함께 살아남으려는 거죠."
덕운정도 그랬다. 잘난 척하지 않고, 크지 않으며, 화려하지도 않다. 이제는 마을 사람들이 맡겨둔 온갖 농기계와 농자재를 말없이 품고 있었다. 옹기장이의 삶은 떠남이 곧 정체성이었다. 그 떠다니는 삶에는 어쩌면 선사시대 유목민의 정서가 겹겹이 배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옹기장이가 가마터를 떠나도 흔적을 남긴다. 가마터가 남고, 깨진 기와 조각이 남고, 발효의 기억이 남듯이. 덕운정 또한 그러하다. 마을 울력의 손길, 서까래 하나하나의 휘어짐, 노적봉 소나무의 결이 아직도 남아 있다. 사람들은 흘러가도, 흙과 나무는 기억을 품는다.
흙과 곡선의 철학을 만나다
▲ 진안 백운면 손내옹기 작업실
ⓒ 이완우
손내옹기에서 만난 이현배 옹기장의 손은 단단한 힘이 아니라 부드러운 길을 내고 있었다. 흙을 섞고, 기다리고, 숨을 주고 기다리는 시간이 옹기장이의 삶이었다. 옹기의 완성은 불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기술이 아니라 순응이었다.
덕운정도 그러했다. 곡선은 곡선 그대로 두고, 휘어진 대들보는 억지로 곧게 펴지 않았다. 사람이 자연을 다듬은 것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을 다스린 건축이었다. 흙처럼 숨 쉬고, 나무처럼 흔들리며, 그러나 끝내 무너지지 않는 유연함으로 옹기와 덕운정은 닮았었다.
강한 것이 오래 남는 것이 아니라, 숨 쉬는 것이 오래 남는다는 것을 알았다. 손내옹기 이현배 장인이 자기 가마터의 방문객에게 이웃 마을의 소박한 정자를 찾아보라고 선택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장인의 손끝에 머무는 옹기가 될 흙에서, 70년 동안 마을 뒤편에서 우두커니 자연처럼 머무는 정자의 기둥에서, 머무름과 떠남이 결국 같은 흐름이었음을 알았다.
▲ 진안 백운면 손내옹기 작업실
ⓒ 이완우
▲ 진안 백운면 덕운정에서 바라본 호남정맥 덕태산
ⓒ 이완우
진안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억년의 세월을 품고 기다림으로 고요하듯이, 진안 고원의 늦가을은 흙과 바람 숨결 속에서 조용히 깊어 가고 있었다. 진안 백운면 손내옹기에서 덕운정에 이르는 4km. 이날의 길지 않은 여정은 도리어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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